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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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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하 이명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 된 사람이고, 일정한만큼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샘플이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든간에.
  최근의 한 팟 캐스트 방송에서 지속적으로 '가카'를 칭송하고 있으나, 사실 뭐......관심있던 사람 그 누가 이명박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가. 이명박 에리카김 염문설에 관한 내용은 <<킹메이커>>라는 책에도 실렸던 바 있을 정도로 유명한 스토리인데. 지금에 와서야 '도덕적'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감히 그 분을 공격하고 있다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BBK따위는 감히 그 분을 공격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나의 대학생활과 함께 대통령.........으로 있으신 분인데 글 하나 써보고 싶어졌다. 



이명박은 복지로 당선된 사람이다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청계천? 현대건설 성공 신화? 다 아니다. 바로 bus 환승 제도의 신설이다. 다들 기억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당시 모든 버스의 번호가 하루아침에 변경되었고, 버스 정류장의 위치까지도 변화했다. 이러한 혼란은 초기에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간이 오히려 더 걸린다, 차가 막힌다, 왜 이렇게 복잡하냐 등등. 시민과의 소통 없이 불도저 식으로 밀어붙여서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하철과 버스 간의 전면 환승 할인' 하나만으로도 게임 끝에 가깝다. 오분 십분 늦어져도 큰 상관이 없다. 왜? 천원 이천원 할인이 되니까. 거기에다가 버스 중앙차로가 점차 늘어나면서부터 버스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물론 이건 체감일 뿐이다. 이를 근거로 할만한 데이터베이스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 또한 이러한 버스 체계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게다가 당시 오직 '서울'에만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면서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왜 이런 좋은걸 하지 않느냐!'라는 불만을 쌓이게 만들어 다른 지자체장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이명박이 점할 수 있었고, 버스/지하철의 특성 상 이용 빈도수가 매우 높기에 광범위한 홍보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2007년 초반 삼촌과의 대화에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삼촌이 당시에 '버스 타는거 천원 이천원 할인할 수 있게 한 거야말로 복지 아니냐'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서 도저히 반박할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냥 그렇다고. 



이명박의 최대 패착은 자신이 뭘 잘했는지 몰랐다는 것 

  사람들은 이명박에 열광했다. 정말 그랬다. 그가 어떤 비리가 있든, 어떤 의혹을 받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건 이미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왜? 그는 우리 주머니의 돈을 '천원 이천원' 아끼게 해 준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그가 '반값 등록금'을 말해도(아니라고 하시긴 한다마는), '감세 정책'을 말해도, 모두 할렐루야!! 무조건 믿습니다!! 를 외칠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아끼게 해 줬으니까. '공약 公約이 공약 空約'으로 변하는 한국사회에서 공약을 진짜로 지키고 돈을 아끼게 해줬다는건 충분히 그 사람을 믿고 신뢰할만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명박의 최대 패착이 드러난다. 여기서부터 또 한 번 추측컨데, 아마 그는 '청계천'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지지한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그럴 만도 하다. 사람들이 버스는 그냥 타고 다니지만 청계천에서는 즐겁게 놀고, 언론에서는 '카메라빨' 잘 받으니 계속해서 청계천을 다루어주고. 사실 도심 한 가운데 그런 공간이 있다는데 센세이셔널 하긴 했지......난 아니긴 했다만. 어찌되었든간에. 
  청계천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버스'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거 있지 않은가. 예뻐하는 놈이 뭔가 또 하면 다 예뻐보이고, 못난 자식은 뭘 하든 못나보이고.....아마 당시 사람들의 심리는 그런 것 아니었을까. 이미 이명박은 당시에 버스로 이해서 '예쁜 놈'이었기 때문이다.
  어지되었건, 버스로 인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음에도 청계천으로 당선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망한게 아닐까. 이명박은.

(+ 물론, 뉴타운으로 인한 '집값 붐'도 한 몫 단단히 하긴 했다. 그거야 워낙 기초적인 거였고.........
이 글의 중점은 왜 '서민층'까지도 압도적으로 이명박을 지지했는가이다. 당시에 한참 인터넷에서 떠돌던 주장은 국개론이었다. 집이 없는 사람까지도 이명박을 지지하게 만든 힘, 그 것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니 '중요한건 뉴타운'이런 소리는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의 파악이다

  만약 이명박이 대선에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그가 자신이 서울시장 재임 동안 제일 잘 한게 청계천이라 생각하든 버스라 생각하든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자기만 생각하고 말면 되거든. 근데 대선에 나올 거였으면, 분석을 애초에 망한게 아닐까....싶다. 임기 초반에 뭔가 큰거 사람들이 받고 싶어 하는거 하나 던져주면 그 이후에 4년이 더 편했을텐데. 분명히. 예를 들어, 이명박이 임기 초반에 반값 등록금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1/3정도 등록금을 깎았거나......다른 복지정책은 생각이 안나네. 여튼. 그런 작업을 했으면 훨씬 남은 임기가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뉴타운 다음의 공신을 '버스'가 아닌 '청계천'으로 했기에,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건 인과관계의 파악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상관관계와의 구별이다. 양의 상관관계를 우리는 흔히 '인과관계'로 쉽게 착각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는 '까마귀가 자주 나니 떨어지는 배의 양이 많아졌다->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혹은 '폐암이 걸린 사람들은 담배를 많이 피웠다->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에 걸린다^_^'이런 것이 양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우들이다. 하지만 두 경우는 분명 다르다. 우연히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잡설을 많이 했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실패했다. 


ps.그러고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를 수익적 모델로 삼기를 추구한다고  나꼼수에서 주장하는데, 버스는 대체 왜 한거지.....진짜 대단한 업적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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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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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19년까지 진행된 제 1차 세계대전, 1929년 시작된 대공황, 1939년 발발한 제 2차 세계대전. 왜 50년도 채 못되는 시기 동안 ‘세계대전’이라 명명된 전쟁이 두 차례나 발생하였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두 전쟁 모두를 제국주의국가들 간의 식민지 경쟁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분명히 두 전쟁 모두 식민지를 두고 벌어진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2차대전의 경우 단지 그 것만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1차대전의 동맹국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였고, 2차대전때의 추축국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이었다. 국가가 상당히 겹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이 국가들이 함께 동맹을 계속하여 맺었는가? 「대공황, 파시즘,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이것이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A. Smith는 자유방임경제를 주창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는 두 나라가 산업화를 빠르게 이루어냈고 정치가 안정적이었으며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자본주의 발달이 빨랐고, 따라서 그러한 체제를 수용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 이탈리아의 경우 국가 내부가 통합된 것 자체가 1880년대였으며, 그렇기에 식민지 보유의 시도 또한 영․프에 비하여 많이 늦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경제발전에 있어 시장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빠른 국가발전을 이루고 그를 통해 영국, 프랑스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차대전이 일어났고, 독일은 영국 프랑스를 따라잡기는커녕 그나마 가지고있던 식민지와 심지어 자국의 영토마저도 빼앗기는 결과만을 받아들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의 세계체제를 브레튼우즈체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1차대전 이후의 세계체제는? 베르사유(유럽)-워싱턴(태평양지역)체제라고 일컫는다. 이 당시 군축회의가 일어났었는데, 여기서는 국가들이 가지고있는 현재의 군사력에 비례하여 미래의 군사력을 결정하였다. 그 말은 군사력의 총량은 변동하여도 상대적인 힘은 여전히 우월하게 된다는 말로써, 당시의 국제질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식민지=부’였고 대부분의 식민지를 영국과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영국과 프랑스가 계속하여 국제사회의 맹주를 차지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대공황이 발생하였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중이나, 분명한 것은 공황으로 인해 프랑스, 영국보다는 독일, 일본 등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이다. 전자의 경우 식민지와 본국의 block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으나 후자의 경우 식민지가 없었고, block화로 인해 수출길이 막힘으로써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로 인해 대공황의 해결책에 관해서도 길이 나뉜다. 전자의 경우 뉴딜식 행동, 즉 국가의 재정 적자를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며 노조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후자의 경우 파시즘적 길을 택했다. 파시즘의 경우 국가가 경제 주체로서 강력하게 등장하여 반자본, 반노동의 논리를 펼쳐나가는 방식이다. 군사적 확장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이러한 경제성장논리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1차대전 이후의 세계체제인 베르사유-워싱턴체제는 그 이전의 세계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후발자본주의 국가(독, 일)들은 국가를 성장시키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바르게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대공황으로 궁지에 몰린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초과공급분을 군비로 흡수해내어 국가의 강성과 유효수요의 창출을 모두 이루어내는 길밖에 없었다. 이렇듯 정치와 경제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와 경제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첫 시간에도 확인하였듯, 신자유주의자 자신들도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정치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전에도 말하였듯, 경제는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도구이고 정치는 자원을 사회 구성원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에 있다. 제 1차대전 이후와 2차대전은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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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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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IMF를 기억할 것이다. 나에게 IMF는 사실 과자값이 조금 많이 올랐던 기억으로밖에 남지 않아있다. 100원하던 새콤달콤이 200원으로 올랐었다. 포카칩의 중량이 줄어들고, 어느순간 값이 올라 500원의 양에 들어있던 것이 1000원짜리로 바뀌어있었다. 아, 하나 더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반이 반장/회장 선거를 했었는데 한 아이가 후보지명을 받으니까 자기 아버지가 명퇴당해서 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나에게 IMF는 그정도 기억을 남겼다. 당시 IMF는 ‘명퇴’바람을 일으키며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성장의 기억뿐인 우리나라에서 후퇴란 그 시기에만 일어났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나누자면 IMF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IMF 이전의 우리나라가 포디즘,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고도성장과 87년기 이루어졌던 계급타협으로 말할 수 있다면, 이후의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된다 할 수 있다. ‘구조조정의 정치경제’에서는 IMF당시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아보기에 좋은 글이다.

 

IMF 구제금융은 최후의 수단이다. 그 어떤 국가에서도 돈을 꾸지 못하고 파산에 이를 때 가는 곳이 IMF이다. 그렇다면 왜 IMF에 갈 정도의 상황이 되는가? 대부분의 국가들은 같은 과정을 거친다. 즉 경기과열 → 수입 급증 → 국제수지 악화 → 외환보유고 감소 → 외채 도입 급증 → 환율 급등 → 외채 환차손 발생 → 외채 유입 중단 및 외화 유출 → 외환보유고 고갈 → IMF 구제금융 요청의 수순을 밟게된다. 이 때 IMF는 그냥 돈을 대출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을 강요하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이다.

광의

안정화

목적

외환부족과 Inflation억제를 위한 단기적 충격요법

정책

자국화폐의 평가절하, 고금리정책, 통화공급 축소, 재정적자 개선, 세수확대, 임금상승 억제책

구조조정

목적

시장기제의 정상화와 제도화를 위한 중장기적 경제개혁

협의

정책

관세인하, 교역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금융자유화, 투자자유화

구조조정은 광의의 구조조정과 협의의 구조조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IMF 당시 환율은 1$당 2000원에 육박했고(자국화폐의 평가절하) 이자는 20%대까지 치솟았다(고금리).  97~98년간 본원통화량도 17,000,000대에서 14,000,000까지 감소하였다(통화공급 축소). 이러한 안정화정책과 더불어 구조조정정책도 추진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 듯 ‘구조조정=해고’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하길 바란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시장의 천년왕국’이다. 이들은 경제위기의 근본이 과도한 정부부문의 성장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재정적자를 없애고 국영은 민영화하여 시장지향적인 성장전략을 채택하며 보호주의정책을 포기하게 하려 했다. 다시 말해서 IMF 구제금융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타국에 강제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경제위기라는 기회를 틈타 국가를 장악한 이후, 국가의 자원을 국내자본과 초국적 자본에게 이전하여 막강한 부르주아지를 창출해냈다. 둘째 복지부문을 축소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여 양극화된 사회를 만든다. 이로써 상층은 응집되고 중간계급은 분파화되고 기층계급은 원자화된다.

 

말도 안 되게 정리를 해버렸지만, 요지는 이렇다. 계급적 타협과 포디즘적 축적체제로 유지되어온 케인즈주의와는 달리, 신자유주의는 시장 본위적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희생당할 국가들은 이를 쉽게 수용할 수 없었다. 이 국가들에게 온 경제위기를 틈타 미국은 IMF를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요했다. 그 방법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을 단지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해법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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